이달의 위인_ 영화산업의 아버지 ‘뤼미에르 형제’
작성자 정보
- 국세청어린이신문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1,077 조회
- 0 추천
- 목록
본문
지금은 우리에게 무척이나 친숙한 ‘영화’. 영화의 시작이 어땠을지 생각해본 적 있나요? 사진과 과학을 버무려 영화라는 새로운 세계를 연 뤼미에르 형제의 이야기를 만나봅니다. 뤼미에르 형제 중 오귀스트 마리 루이 니콜라 뤼미에르(Auguste Marie Louis Nicholas Lumière)는 1862년 10월 19일에, 동생인 루이 장 뤼미에르(Louis Jean Lumière)는 2년여 뒤인 1864년 10월 5일 태어났어요.
▲뤼미에르 형제(왼쪽 사진)가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영화관이 없었을지도 몰라요.
뤼미에르 형제의 아버지는 본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였습니다. 그러나 신기술인 사진기가 발명되고 큰 인기를 얻게 되면서 일거리가 줄어들었죠. 이에 뤼미에르 형제의 아버지는 사진사로 직업을 바꿨습니다.
여섯 자녀 중 큰아들인 오귀스트와 둘째 아들인 루이 뤼미에르 형제는 그런 아버지를 따라 사진에 굉장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둘 다 과학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죠. 형제는 그들이 대학에서 배운 과학 원리를 바탕으로 아버지의 사진 연구를 돕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존의 필름 기술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데 성공했죠.
이들의 연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1894년 2월 13일에 카메라와 영사기의 기능을 동시에 갖춘 ‘시네마토그래프(Cinématographe)’라는 장치를 개발한 것인데요. 이즈음 토머스 에디슨도 ‘키네토스코프’라는 영사기를 개발했어요. 당시 에디슨의 발명품은 작은 구멍을 통해 혼자서만 영상을 볼 수 있었다면, 뤼미에르 형제의 발명품은 지금의 극장처럼 대형 화면으로 여러 사람이 함께 볼 수 있다는 차이가 있었죠.
뤼미에르 형제가 이 기술을 이용해 처음으로 영상을 찍은 것이 지금으로부터 130여 년 전인 1894년 3월 19일이었어요, 그리고 이듬해인 1895년 12월 28일 파리에서 첫 상영회를 열었죠.
이때 <뤼미에르 공장의 출구>, <기차의 도착>, <물 뿌리는 정원사> 등 모두 10편의 영화가 상영됐는데요. <기차의 도착>을 보고 당시 사람들은 진짜로 기차가 들어오는 것으로 착각해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고 도망갔다고 해요. 이후에 시네마토그래프가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며 오늘날과 같은 본격적인 영화산업이 시작됐답니다.
관련자료
-
이전
-
다음